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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당신의 디자인은 5천 원인가?
    창작 2022. 4. 12. 11:16

    몇 년 전 대학 재학 시절 지인들의 부탁으로 디자인 외주작업을 시작했었을 때 나는 한창 자신감도 충만했고 디자인에 대한 열정도 타올랐었다. “이 정도면 돈 받고 일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외주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크몽, 라우드소싱, 숨고 같은 외주 플랫폼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이트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프리랜서로 멋진 작업도 잔뜩 하고 돈도 버는 꿈같은 환상을 품은 채.

     

    왜 당신의 디자인은 5천 원인가?

    희망 회로를 풀가동하던 초보 디자이너이던 나는 프리랜서 외주 플랫폼들을 보고 난 후 2가지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정말 많은 프리랜서들이 외주 작업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그 사람들이 너무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디자인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전의 나는 운이 좋게도 나를 인정해주는 지인 혹은 지인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과 작업을 해왔었다. 그분들은 나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내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알았으며 나의 창작에 대한 재능을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만들어낸 작업물에도 정당한 보상을 해줬었다.

     

    하지만 외주 플랫폼의 작업자들은 ‘로고 1만 원 신속 제작’, ‘포스터 5천 원 고퀄리티 디자인’를 내걸고 밥 한 끼도 안될 값에 디자인을 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작업 의뢰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기획을 한 후 콘셉트를 짜고 시안을 2, 3가지 만들고 피드백을 받고 (몇 번의) 수정을 하고, 인쇄물이라면 종이의 재질과 가공을 정하고 인쇄소를 알아보고 출력하는 과정까지.. 간략하게 말해도 이 정도의 품이 드는데 그걸 만원에 해준다고?

     

    만원 짜리 디자인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나는 대학시절 프리랜서로 디자인을 시작했고 그 후 몇 군데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한 후, 지금 다시 프리랜서로 나만의 디자인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처음 시작하는 디자이너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과 창작자로서의 예술혼이 함께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무수한 경쟁자들이 화개장터처럼 “오천 원”, “만원”을 외쳐가며 값싸게 디자인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하향 평준화된 시장 가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값싼 디자인을 요구한다.

     

    물론 그 작업이 진짜 딱 만원 정도의 가치만 필요한 작업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수준 미달인 작업자들도 많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수준 미달의 작업자들이 시장가를 낮추고 소비자들은 그 가격에 익숙해진다. 실력과 감이 있는 디자이너들도 시장가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가에 맞추기 위해 작업 기한을 말도 안 되게 줄이고 결과물의 퀄리티는 안 좋아진다. 그리고 이 피해는 다시금 고스란히 신입 디자이너와, 프리랜서, 디자이너 지망생에게 돌아간다.

     

    방관하고 가격경쟁만을 부추기는 플랫폼도 한몫을 하고 있기에 구조적인 문제 또한 크다. 그래서 나는 이 잘못된 굴레에 들어가 단지 내 호주머니에 몇 푼을 쌓기 위해 나의 창작혼을 파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저 아집이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디자인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AMALE